9기 2019년

정기수 ㅣ 매년 10개월간 약 10개국 이상 세계여행을 하는 프로그램’ 입니다.

여행지 : 헝가리  ▶ 슬로바키아  ▶ 폴란드  ▶ 우크라이나  ▶ 터키  ▶ 미국  ▶ 콜롬비아  ▶ 에콰도르  ▶ 페루 ▶ 볼리비아  ▶ 아르헨티나  ▶ 호주  ▶ 인도네시아  ▶ 태국


5번 김호준의 문집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항구에 있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항구에 있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목차

1. 첫 출항 

1)결심

2)부서지는 파도

3)항해

2. 흔들리는 나

1)갑판 위에서 춤을

2)폭풍우 속으로

3)세번째 출항

3. 보물섬을 찾으러 

1)난파

2)뚜렷해진 항로

3)내가 찾은 보물

 

 

 

 

1. 첫 출항

1)결심

2016년에 밖에서 실컷 놀고 난 집에 돌아왔다.

그 때가 중학교 2학년, 15살이었다.

난 월, 수, 금마다 대치동으로 학원을 다녔고 화, 목은 실컷 놀았다.

학원을 가는 날에는 학교가 끝나자마자 친구들과 버스를 타고 대치동에 가서 저녁 10~11시까지 학원에 있다가 

친구들과 핫도그를 하나씩 입에 물고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학원을 가지 않는 날에는 학교가 끝이 나자마자 자전거를 타고 전속력으로 피시방에 갔다.

우리가 도착 할 때 피시방은 거의 비어있다.

그럼 그 때 실컷 게임을 하고 난 뒤 저녁에 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항상 방 안에 있었다.

방 안에서 항상 휴대폰을 붙잡고서 SNS, 유튜브를 했다.

그렇게 격리되어 지내다 보니 가족과 있는 시간이 줄고 가족과 있는 것이 어색해졌다.


그러던 중 4월 즈음에 엄마가 내게 '해외 여행 갔다 올래?'라고 저녁 밥을 먹다가 말씀하셨다.

난 한 치의 고민없이 '안 갈래요. 죽어도 안 갈래요.'라고 대답했다.

그 때는 진짜 지금 친구들과 놀며 지내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그래서 고민없이 거절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당연히 해외 여행을 안 가는 줄 알고 있다가 여름 방학이 되기 2주 전에 엄마가 내게 '이미 500만원 입금했고 

돈 날리기 싫으면 가라'라는 말씀을 하셨다.

진짜 너무 싫었다.

모르는 사람들과 한 달 동안 지내는 것은 정말 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가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14기 여름 시즌을 가기로 결심했다.

하반하에 가서 2~3일 종도 생활을 하고 나니 하반하가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일단 한국에 있는 일반 학교와 달리 나에게 맞는 공부 수준과 성적으로만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것이었다.

또한 생활력도 중요시 여기는 곳이어서 내가 그 매력에 빠졌다.

여름 시즌을 신나게 즐기고 거의 끝나갈 무렵 써니쌤께서 8기에 오라고 권하셨다.

난 그 때 하반하가 좋긴 했지만 1년은 좀 두려웠다.

한국을 떠나서 1년 동안 해외를 여행하는 것이 좋은 경험일 수도 있겠지만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 8기는 오지 않겠다고 했지만 15기 겨울 시즌에는 온다고 했다.

한국에 가자마자 난 부모님께 가고 싶다고 말하고서 다시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시즌을 갔다오고 나서 하반하 생각을 자주했다.

특히 시험 기간일 때 가장 생각이 났다.

학원에 거의 매일 있으며 칠판을 보다 멍을 때리고 있으면 하반하가 생각났다.

14기 때 갔던 그리스, 불가리아, 마케도니아가 떠오르며 잠들곤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겨울 방학이 돼서 15기에 갔고 가서 서핑을 타고 실컷 놀다가 한국에 돌아왔다.

그 뒤에 7기 비상파티를 보러 갔다.

7기 사람들의 공연을 보고나서 사촌 동생과 함께 할머니를 뵈러 가기 전에 대장님과 써니쌤께 인사를 드렸다.

인사를 드리고서 할머님께 가려는데 써니쌤께서 내게

"호준아. 우리 할 이야기가 있지 않니?"라고 하셨다.

난 "8기요?"라고 말했고 "그렇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자리에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아.....어떡하지.....1년은 너무 긴데...지금 이 생활도 나음에 드는데...' 등 여러 생각이 내 머리 속을 복잡하게 했다.

그러던 중 귀신이 들린 것처럼 '저 8기 오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하고서 솔직히 후회를 하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1년이라는 시간이 짧을 수도 있지만 내게는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걱정도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내가 큰 배낭을 메고 인천 공항에 들어선 순간 난 결심했다.

내가 택한 여행이고 내 인생에서 가장 무거운 결정을 내린 것이기도 하고 해서 이 여행을 잘 해내자고 생각했다.

그 때 난 항구에 있던 안전한 배를 정비하고 배의 조종대를 잡고 항구를 떠난 것이다.

가장 안전한 항구를 떠나 바다 위를 항해하며 여러 나라를 보고 겪으며 성장하기 위해 풀항한 것이다.

그렇게 나의 세계 여행이 시작 되었다.

 

2)부서지는 파도

내게는 운동, 일, 노는 것이 파도처럼 느껴졌다.

그 중 가장 큰 파도는 노는 것이다.

한국에서 하도 공부를 안 했어서 책상을 지키지 못했다.

툭하면 자리에 일어나서 딴 짓하고 친구들을 만나러 가고 그랬다.

그래서 그런지 하반하에 와서도 잘 지켜지지 못했다.

여행 초반에도 '잘하자!'라고 마음 속으로 다짐하고 새로운 주를 시작을 하는데 노는 것들 때문에 

그 다짐은 해변가에 세운 모래성이 파도에 의해서 부서지는 것처럼 한 순간에 무너졌다. 하지만 하반하에서 지내며 공부 습관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어느 덧 전교 1등도 해보게 되고 정산을 해서 꾸준히 돈을 벌게 되었다.

내가 그렇게 하기 위해서 진짜 유혹 거리들을 다 참았다.

항상 저녁에 애들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하거나 놀고 있을 때 책상을 지키거나 방 안에서 북을 잡고 공부를 했다.

속으로는 나도 저기서 놀고 싶고 같이 웃으며 떠들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도 내 손으로 무언가 성과를 내고 싶고 해내고 싶고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마음으로 참고 독해와 단어를 베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써니쌤, 대장님을 제외한 선생님들께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내가 바뀌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더 잘하려고 미리 미리 공부도 하고 했다.

추가적으로 일을 할 때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하고 봉사하는 습관도 만들려고 했다.

거기에 하나씩 추가를 하다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책을 원혁이의 추천으로 같이 읽게 되었다. 

'해리포터'라는 책이었는데 사실 예전에 엄마가 내게 읽으라고 사다 주셨는데 읽지 않고 책상 한 구석에 박아 두었던 책이다.

그래도 읽기 시작했다. 사실 초반에는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읽지 싫었지만 원혁이가 읽어서 같이 읽었다.

읽다보니 내가 해리포터에 빠져서 살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책을 읽다가 조깅을 가고 갔다와서 독해와 단어를 끝내 놓으면 또 다시 책을 읽고 자기 전까지도 책을 읽었다.

내가 이렇게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거나 할 때 내 할 일을 다 마쳐 놓은 상태라는 것이 너무 좋았다.

내가 내 일을 하나씩 하나씩 해내고 있는 것이었고 그렇게 내 위치를 조금씩 높이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사실 내가 잘 성장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어서 항상 내 미래가 두려웠었다.

그랬던 내가 여행을 하면서 남을 배려하고 도와주고 책상도 지키는 습관을 조금씩 기르면서 

조금씩 자신감도 생기고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파도라고 생각했던 노느 것을 억제하며 파도가 나와 부딪혀 부서졌다.

 

예전에는 내게 엄청나게 큰 쓰나미처럼 느껴졌던 파도에 휩쓸려 어디론가 떠내려가 탁구를 치거나 운동을 하고 있거나 놀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크게 느껴졌던 파도가 작게 느껴져 내 다리에 부딪혀 부서져 버린다.

아무리 큰 파도였어도 내가 내 할 일을 성실하게 꾸준히 해 나가면서 그 파도들이 작어져 작은 파도가 되어 부서진 만큼 내가 여행을 하며 성장한 것 같다.

 

3)항해

내가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난 1년 동안 여행오는 것을 두려워 했었다.

하지만 아프리카를 다 돌고 영국, 프랑스, 스페인, 터키 등을 여행하면서 생각이 조금씩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난 내가 여행을 하기 전까지 내 자신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1년을 여행하다 보니 그게 아니였다.

아직 나는 내 자신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이게 여행에서 얻어가는 것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8기 때 꽤 여러 나라를 다니며 여행을 했다.

그 중 가장 즐거웠던 나라는 터키다. 터키에서 이스탄불, 셀축, 파묵칼레, 카파도키아를 다니며 여행했는데 가장 좋고 행복한 기억들이 많다.

특히 카파도키아가 가장 재미있었다.

거기서 이제 처음으로 이안 가족을 만났다. 우리가 머무는 숙소에서 같이 머물면서 식사도 같이 하다보니 친해져서 

이안이 조깅을 좋아한다고 해서 조깅을 같이 뛰게 되었다.

근데 시작부터 장난이 아니었다.

꽤 빨리 뛰기 시작했는데 카파도키아는 바위 유적지여서 호랑이 이빨처럼 생긴 엄청나게 큰 바위로 카파도키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안이 리더로 뛰는데 바위 유적지를 보기 위해서 15~20분을 막 뛰다가 쉬면서 바위 유적지 안으로 들어가서 

교회로 쓰였던 곳도 구경하다가 또 다시 15~20분을 뛰기를 반복하다 카파도키아에 있는 가장 큰 산 정상까지 뛰어 올라갔다.

가는 동안은 진짜 죽을 맛이었다.

초반에는 주변에 보이는 아름다운 경치가 눈에 들어오고 뛰는 것이 딱히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한 1시간 40분 정도 뛰었을 때는 진짜 지옥이었다.

아니 카파도키아에서 가장 높은 산을 갑자기 쉬지도 않고 쭉 뛰어 올라가는 것이다.

그 때는 풍경이고 뭐고 눈에 하나도 안 들어오고 앞에 있는 이안의 뒷 모습만 보이고 진짜 이 악물고 뛰었다.

내 앞에는 이안, 민승 형님, 우진 형님이 있고 내 뒤에는 원혁이와 종헌이가 있어서 승부욕도 생겨서 죽을 힘을 다해 뛴 것 같다.

한참을 뛰고나니 정상에 도착했고 우리 모두 그 자리에 풀썩 주저 앉고 숨을 고르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다른 세상이 보였다.

내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그런 풍경이었다.

그런 고에서 거의 마지막 날에 그 아름다운 세상 속에서 사륜 바이크를 탔다.

그건 만 17세 이상만 운전이 가능했는데 내가 그때 만 15세 였는데 나보다 한 살 많은 형님들을 이기고 운전사로 뽑혔다.

거기서 운전하는 사람으로 뽑혔다는 것도 내게는 너무 좋고 행복했다.

인정도 받고 세계를 둘러보며 내 자신을 알아가며 성장하고 하는 것이 너무 좋았다.


이렇게 여행을 하면서 나 자신을 알가는 것도 즐거웠지만 인정을 받는 것도 즐거웠다.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내 위치가 올라가는 것이기도 하다.

하반하에서 여행하며 대장님, 써니쌤과 체스도 두고 테니스도 치며 내 위치도 어느 정도 생기고 내가 노력한 만큼 인정을 받는 것이 보람찼다.

그러면서 내가 느낀 것은 사람은 인정을 받으면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만약 내가 인정받지 못하고 혼만 나면 

내가 잘 하려는 의욕도 어느 순간 잊어버렸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노력한 것을 인정받는 것이 너무 보람찼고 내년에 오면 내 자신을 더 잘 알게되고 

한국에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성장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난 용기를 내서 배를 몰고서 여행을 시작했고 그 속에서 한국에서 지내는 것보다 나를 성장시킨 다는 것을 깨닫고서 항해를 결정했다.

 

2.흔들리는 나

1) 갑판 위에서 춤을

또 다시 여행을 떠나 비밀병기의 일원이 되었다.

난 8기 여행을 할 때 대장님, 써니쌤께서 비밀병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셨다.

일단 내가 좋아하는 스노우보드, 듣도보도 못한 윈드서핑, 바다 속을 볼 수 있는 스쿠버 다이빙, 바람을 가르며 말과 함께 달리는 승마, 

파도를 타고 앞으로 나아가는 서핑!

이 다섯 가지 운동 종목만으로도 난 이미 비밀병기에 내 마음은 빠져있었다.

그래서인지 난 이 모든 종목을 다 좋아하고 즐겼던 것 같다.

이 중에서 내가 가장 즐겼던 종목은 스노우 보드와 승마였다.

 

스노우보드는 슬로바키아에 있는 타트라산에서 탔다.

이곳은 한국 스노우보드 장과 달리 슬로프가 정해져 있지 않았다.

난 그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왜냐하면 한국 스노우보드장은 정해져 있는 슬로프만 가지만 슬로바키아의 슬로프는 그렇지가 않았다.

내가 가고 싶은 길이 있다면 그 누구도 막지 않고 용기만 가지고 있다면 나의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메리트였다.

그리고 슬로프에서도 한국과 비교가 되었다.

한국에서 지낼 때 다른 길은 보지 않고 누군가가 만들어준 길, 그냥 대학만 보고 가는 길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 길을 가야만 했다.

그 결과 잘 하지 못했고 하반하에 오게 된 것이다.

난 내가 스노우보드를 타며 나만의 길을 마들며 내가 즐기며 사는 것이 더 좋았다.

내가 정해져 있는 길에 갇혀 살았다면 내가 스노우보드를 타면서 프리 라이드 존이라는 곧을 용기내서 들어감으로서 

이제는 내가 나의 길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승마는 인도 마테란에서 처음 배웠다.

예전부터 승마는 배워보고 싶은 종목이었다.

그래서 승마를 배우기 전부터 우진형님이랑 이야기 할 때 미래를 막 떠올렸다.

같이 말 한 마리씩 타고서 멋지게 달리자고 하면서 이야기를 하며 미래를 계획했다.

승마를 바로 시작했다.

승마를 바로 시작했을 때는 업다운만 잘해도 잘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나는 윤쌤과 대장님께서 타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

그래서 난 '꼭 저렇게 타야겠다' 라고 다짐했다.

그 이후로 계속 말을 이해하며 말과 호흡을 맞추며 꾸준히 탔다.

타다보니 자연스럽게 실력이 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난 말이 무섭지 않고 오히려 더 귀엽고 착하고 친근한 동물로 느꼈다.

또한 내가 언제 승마를 배우고 동물과 같이 호흡을 맞추며 운동을 할지도 생각해 보았다.

내 생각에는 그런 운동도 거의 없을 뿐더러 승마가 매우 좋은 경험이었다.

말은 나와 말을 하면서 소통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승마를 배우면서 말이 말을 하지 않아도 교감을 하면서 말을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 

이걸 통해서 다른 사람들과도 말을 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난 이렇게 운동을 통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면서 공부에서 배울 수 없는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그 때를 누구보다 즐긴 것 같다.

마치 선원들이 갑판위에서 춤을 추듯이 말이다.

 

2)폭풍우 속으로

여행을 2년 동안 하다 보니 관계에 대해서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마음속에서는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오래 여행을 하면서 친구나 동생이나 선생님들과도 갈등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 중 내가 가장 어렵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관계에 대해서 말해보려고 한다.

 

난 시즌으로 왔을 때도 8기였을 때도 내 물건 관리 하나는 잘했다.

그래서 난 항상 숙소를 이동할 때 마다 마지막에 방을 한 번씩 확인하며 다른 애들이 물건을 놓고 갔는지 확인했다.

그러던 중 이집트에서 일이 일어났다.

난 윤수랑 초등학교 4학년 때 내가 강남으로 전학을 가게 돼서 만나게 된 친구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지금까지도 가장 친한 친구다.

그러다 내가 8기에 가서 윤수가 시즌으로 두 번을 왔다.

내가 겨울 시즌 때는 1월 1일에 다 같이 모여서 소원을 말하는 자리에서

'윤수도 내년에 같이 여행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라고 말을 했다.

그 때 윤수는 절대로 오지 않겠다고 한 상황이었고 써니쌤께서도 저녁마다 윤수를 불러서 설득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윤수는 워낙 고집이 세서 시즌이 끝이 날 때까지도 비밀병기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 한국에 가니 내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비밀병기에 부모님이 반강제로 보내신 것이다.

비밀병기에 결국 와서 나랑 여행을 하면서 티격태격 하기도 하고 신나게 놀기도 했다.

그런데 윤수와 이집트에서 싸웠다.

난 항상 하던대로 숙소를 이동하기 전에 방을 싹 뒤지고 나서 내가 윤수에게 준 보조보조 배낭을 주웠다.

난 내가 가지고 있다가 윤수가 그 물건을 찾으면 돌려줄려고 했다.

그게 나도 모르게 폭풍우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며칠 동안 윤수가 찾지 않아서 내가 그 물건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윤수가 화를 냈다.

자기가 찾고 있는줄 몰랐냐고 하면서 나에게 화를 내서 나는 그걸 몰랐고 너가 찾으면 줄려고 했다고 말을 했다.

하지만 윤수는 내가 그렇게 행동을 해서 애들이 싫어한다고 말을 했고 난 그걸 들은 순간 윤수와 싸우게 되었다.

실컷 싸우고 나서 진짜 며칠 동안 말을 하지 않고 아는 척도 안했다.

그러다 결국 4일 뒤에 말을 했다.

진짜 사과하는게 그렇게 어려운 적은 처음이었다.

윤수랑 그렇게까지 싸운 적이 없어서 그런지 사과하는게 쉽지 않았다.

말로는 설명하기가 어렵지만 진짜 화해하는게 너무 어려웠다.

서로가 이미 마음속에서는 다 풀린 것을 다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하기가 어려웠다.

''아....화해하려다가 거절하면 어떡하지......이런 걸로 화해를 하냐....화해하고 다시 친해져야 되는데....' 등 

여러 생각이 오가고 있을 때 윤수가 나에게 먼저 왔다.

그 때 솔직히 너무 고마웠다.

서로에게 다가가서 화해하는게 어색하고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텐데 용기내서 다가와준 것이 너무 고마웠다.

난 당연히 윤수의 사과를 받아주며 나도 미안했다고 하며 고맙다고 했다.

그 때 난 폭풍우 속으로 들어갔다가 간신히 나온 느낌이었다.

관계라는 것이 어렵지만 그 속에서도 배우는 것이 많고 여러 사람들과 다투어도 용기를 내서 먼저 다가가 화해하려고 노력하는 그 점이 가장 멋있고 

폭풍우 속에서 가장 빠르게 나올 수 있는 것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3) 세번 째 출항

여행을 하면서 어렵고 힘든 점은 누구에게나 있다.

관계가 어렵거나 공부가 어렵거나 하반하에서 하는 수업이나 생활하는 부분이 힘들거나 할 수 있다.

또한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길을 택할 수 도 있다.

 

난 인도 마테란 올림피아 레이스에서 실컷 승마를 하고서 집으로 걸어 돌아오는 길에 고등학교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다.

왜냐하면 난 한국 학교 생활을 하지 않은지도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그 만큼 한국 학교가 그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고등학교에 가고 싶다는 욕구가 컸다.

그랬기에 하반하 비밀병기에 와서 생활하는 것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하면서 하반하 생활을 잘 하지 못해서 어려웠던 것 같고 

점점 하반하 생활은 조금씩 힘들어지기도 했다.

그렇다보니 윤수나 호근이처럼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길을 택하고 싶어졌다.

한국 학교 생활도 안 한지 2년이 되었고 친구들도 그립고 하반하 생활도 힘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쪽으로 마음이 간 것 같다.

 

하지만 여행이 거의 끝나갈 때 즈음에 다시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여행을 나온 이유가 뭐였는지 생각해 보았다.

학교를 다니면서 난 공부에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수업 시간에 집중 안하고 자고 애들이랑 뒤에서 이야기 하고 성적도 그리 좋지 않았다.

그래서 내 미래 꿈을 찾기 위해서 하반하에 온 것이었다.

한국에서의 친구들, 핸드폰, 게임, 피시방 등 여러 유혹 거리들을 버리고서 해외로 여행을 떠난 것이었다.

그런 내가 2년을 하면서 힘든 과정을 거쳤다.

하지 않았던 공부도 하고, 일도 하고, 처음 도전해 보는 것들이 꽤 많았다.

그 것들을 하면서 힘들었지만 해냈을 때 성취감을 느끼며 많은 것들을 깨닫고 발전해 나갔다. 그리고 한국에서 배우지 못하는 생활면이나, 일하는 방법, 운동, 센스, 눈치 등을 배웠다.

그런 것들을 배우면서 한국과는 달라지는 것을 느꼈었다.

그리고 좀 더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그런 나를 다시 한국 학교에 간다는 것은 날 다시 유혹의 방에 돌려 놓는 것과 똑같아 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하반하에서 힘들었다고 다시 쉬운 길을 택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라고 생각했다.

2년 동안 조금씩 나의 단점들을 보완하고 성장했는데 다시 유혹 천지인 한국으로 가는 것이 잘 못 됐다고 생각했고 

가면 이제 2년 동안 만든 것들이 물거품이 되는 것이었다.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나도 속으로 상당히 많이 생각하고 어느 것이 내게 좋을지, 어느 선택이 내가 후회하지 않을지, 한국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살지, 

내년에 하반하에 오면 어떻게 살고 어떤 목표를 가지고 살지 계속 고민했다.

결국 난 나의 지난 노력들이 물거품이 되지 않게 세 번 째 출항을 선택했다.

아직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 어떤 것을 할지 모르고 써니쌤께서 예전에 하신 말씀이 있다.

'할게 없다면 하던 것을 꾸준히 해라. 꾸준히 하다보면 그 분야에서 언젠가 전문가가 되어있을 거다'라는 말씀이셨다.

나도 지금 할 것을 정확히 잡지 못했고 지금하고 있는 여행을 꾸준히 하며 일이나 센스 등을 꾸준히 배우는 것도 좋은 것 같아서 

세 번 째 출항을 결정하게 되었다.

 

3. 보물섬을 찾으러

1) 난파

세 번째 출항이 시작되었다.

또 다시 새로운 아이들과 같이 여행을 하게 되었다.

올해까지 총 3년이라는 시간을 여행했다.

여행을 하면서 내가 느낀 것은 내가 보지 못한 나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는 것과 나 자신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난 올해 나의 좋지 않은 모습을 많이 봤다.

일단 난 중심 없이 내가 생각하기에 옳지 않은 짓인데 생각없이 하고 폭력적인 모습도 보였다.

내가 중심이 잘 잡혀져 있지 않았다.

그래서 항상 무언가를 결정할거나 할 때 팔랑귀처럼 주변 사람들 말을 듣고 할 때가 있었다. 그래서 나의 의견이 없을 때가 있었다.

그리고 내가 올해 어시스트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어서 항상 일을 할 때 뒤로 빠져서 아이들이 일 하는 것을 보거나 

나중에 가서 도움이 필요할 것 같으면 도와주고 그랬다.

또한 폭력적인 모습도 보여졌다.

내가 중학교를 다닐 떄 우리 중학교를 욕한 중학교 애들이 있었다.

그건 옆 학교였는데 그 학교와 패싸움을 하게 되었다.

그 때도 20~30명이 상대 학교에서 우리 학교에서도 왔다.

결국 패싸움을 하게 되었고 경찰이 와서 우리는 도망갔다.

그리고 그 폭력적인 모습은 하반하에 와서도 보여졌다.

과란단에서 민수가 운동을 하다 나를 다치게 했는데 사과를 제대로 하지 않고 하라고 했는데도 '쏘리'라고 말하고 손들며 가는 것이다.

거기서 내가 너무 화가나서 폭력적으로 변했고 그 때 나는 내가 폭력적인 것을 느꼈다.

그리고 3년차 인데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아직 너무나도 일 실력이 부족하고 글 쓰는 실력도 부족했다.

그리고 내가 특히 올해는 공부가 너무 싫어서 인지 계속 공부를 하기 싫어서 애들이랑 포켓볼을 치러 가고 

축구하러 가고 수영하러 가고 농구하러 가면서 계속 공부를 미뤘었다.

책을 읽으려고 책상에 앉아서 킨들을 잡으면 30분을 버티지 못했다.

진짜 그럴 때마다 책이랑 나랑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전생에 책을 진짜 싫어하는 아이여서 지금까지도 그 영향이 끼치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실 3년차라는 것 때문에 마음에 부담이 초반부터 엄청나게 컸었다.

'3년차니까 잘 해야지, 선생님들을 도와서 잘 해야지, 정산도 잘해서 처음 온 아이들에게 맛있는 것도 사줘야지, 

일도 3년차 답게 잘 해야지' 등 온갖 부담감과 나의 다짐들이 나를 짖눌렀다.

그리고 그 다짐들은 선생님들의 기대에 만족시키지 못하고 되려 더 많은 실망감을 안겨드렸다.

정산이든 생활이든 신뢰든 모든 것에서 많은 실수를 하고 그 것으로 인해 선생님들과의 신뢰는 점점 떨어져갔다.

정산에서는 잘 하지 못하고 계속 빚만 지고 생활에서는 점 점 잠이 많아지고 부족한 점들이 드러났다.

그렇다보니 어느 순간 내 자신을 돌아봤다.

난 내 자신을 고치려고 하지 않았고 그저 방치해 뒀었다.

그래서 내가 마지막 여행에서 나의 밑바닥까지 가게 된 것 같다.

그러면서 난 나의 단점들에 알게 되었고 그 점에 대해서 고쳐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는 철 없는 어린아이가 그저 노는 것에 정신 팔려서 자기 할 일을 못 찾고 있었다. 그렇게 어린 아이가 놀다보니 어느덧 18살이 되어있었고 그 아이의 몸과 정신 상태는 좋지 않았다.

마치 난파가 된 배 같았다.

배는 나사가 빠지고 정비는 해야 하는데 신경쓰지 않고 속도를 주체하지 못하고 달리다가 결국 어느 큰 돌에 부딪혀 난파가 된 듯한 모습을 연상캐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나의 모습이었다.

내가 보지 못했던 나의 또 다른 모습과 나의 단점들이었다.

 

2)뚜렷해진 항로

써니쌤께서 내게 말씀해 주신 것이 있다.

어느 누구나 실수를 한다고. 완벽한 사람은 없다고.

그리고 그 실수에 대해서 반성하고 고치려는 사람이 멋있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난 3년 여행을 하면서 나 자신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었다.

2019년 올해에 가장 많이 느끼고 깨닫는 것 같다.

내가 실수를 하고 잘못 생각하고 감정에 치우쳐 행동하고 그런 것들에 대해서 선생님들께 혼이 나고 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안되겠구나.

지금까지는 어려서 괜찮았지만 이제는 나도 18살이고 한국에 돌아가면 19살,

절대 어리지 않은 나이구나.

18살인만큼 나도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해야 겠구나.

남은 여행 기간 동안은 꼭 잘 살아서 나의 단점들을 꼭 고치고 더 성장해야 겠다.

그리고 3년 여행의 마무리인 만큼 잘 하고 중심을 잘 잡아야겠다' 라고 생각했다.

난 여행을 하면서 또 다시 내가 학교 다닐 때를 떠올렸다.

내 주변 친구들이나 사람들을 보면 항상 자기 중심이 잡혀지 있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어떤 것을 선택할 때 항상 어떤 것을 고를지 고민하고 결국 자신이 결정하지 못 할 때도 있고 정해도 후회하며 탓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도 그런 때가 있었고 지금 나도 내 중심을 잡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난 항상 재미가 우선이고 남 생각을 하지 않고서 행동했었다.

아이들이랑 장난을 칠 때도, 공부를 할 때도, 말을 할 때도, 감정에 치우쳐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때가 있었다.

그러한 행동들을 반성하고 있다.

그러한 행동들을 고쳐서 내가 말하기 전에, 행동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는 습관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이게 고쳐진다면 남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줄을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나의 중심은 바르고 옳은건 옳다고 아닌건 아니라고 말 할 수 있고 착했으면 좋겠다.

요즈음 시대는 사람들에게 신경을 잘 안 쓴다.

지하철이나 사람이 많은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신경을 안 쓰는 사람들도 많이 봤기 때문에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면 도와주고 싶고 그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이제는 중심이 좀 잡혔다.

그래서 나의 의견이나 생각을 좀 더 잘 말하고 있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고 좀 더 나 자신을 부지런하고 정직해 지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나의 진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내가 16살 때 꾸었던 꿈인 스노우보드 강사를 실현시켜보려고 한다.

지금은 여행 중이어서 한국에 가면 스노우 보드도 배우면서 기술들을 익히고 나중에는 강사 자격증 과정도 해 볼 생각이다.

 

예전에는 막막했던 나의 길이 뚫린 느낌이다.

지금까지는 미래가 두렵고 어느 길로 가야할지 몰라서 주변을 해맸었다.

하지만 여행을 하면서 내가 좋아하고 잘 하는 것들을 알게 되었고 그 것이 내 꿈이 되었다. 나의 배를 정비하고 조종대를 잡고서 배를 몰고 뚜렷해진 항로를 보고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3)내가 찾은 보물

여행이 거의 끝나가면서 내가 이 여행에서 찾은 보물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

16살에 부모님의 곁을 떠나 세상을 둘러보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내가 가장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보물이 무엇인지 여러 나라를 가면서 찾아다녔다.

하지만1~2년 동안 찾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여행이 거의 끝나가면서 알게 되었다. 내가 찾고 있던 보물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내가 그 보물을 찾을 수 있게 3년 동안 키워주시고 사랑해주신 분들이 계시다.

 

그건 바로 대장님, 써니쌤이다.

내가 3년 동안 잘 해드리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챙겨주시고 항상 내게 도움이 되는 말씀들을 해주셨다.

세상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공부는 하기도 싫어하고 운동 밖에 몰랐던 나를 바꿔 놓아주신 멋진 부모님이다.

내가 잘못했을 때 기회를 한 번 더 주시며 믿어주셨다.

그 덕분에 내가 여기까지 성장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여행이 끝나고 무엇을 해야 할 지 알게 되었고 이 3년 여행이라는 시간 동안 나에게 가장 소중한 보물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셨다.

 

나는 배를 타고서 항해를 하면서 보물섬을 찾으러 다녔다.

결국 나는 보물섬을 찾았다.

내가 찾은 보물은 가족의 품 속이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고 부모님께 말대꾸를 하고 반항했던 내가 너무나도 한심하고 부모님께 죄송하다.

내가 보물을 찾으러 떠났는데 그 보물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지만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것을 몰랐던 같다.

이제는 가족이 얼마나 내게 소중한지 알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주신 나를 가장 사랑하고 아껴주시고 키워주시고 낳아주신 부모님!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제가 아무것도 모르고 부모님 말씀을 따르지 않고 말대꾸하고 속을 썩였었네요.

지금은 3년 동안 하반하에서 여행하면서 제가 어리석고 부족했단 것과 부모님의 존재에 대해서 알게 되었어요.

제게 이런 좋은 경험 할 수 있게 도와 주신 것 정말 감사하고 저를 믿고 항상 지원해 주신 것도 감사해요.

그리고 지금 제 마음 속에는 부모님이 항상 0순위에요.

그리고 가장 소중한 보물은 가족이고요.

제 10대를 이렇게 멋지게 꾸며주시고 제 부모님이 되어주시고 제 인생에 남 부럽지 않은 세계 여행 3년을 할 수 있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항상 사랑하고 효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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